사는 얘기

아빠 마음

엘도라 영 2023. 3. 24. 13:16

내아들의 꿈은 축구선수였다.

중학교 1학년 가을에 유소년 축구팀 입단 심사를 보기로 약속을 했었다.

하지만 중학교를 입학한 따스한 봄날 아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학교 운동장에서 열심히 축구를 하던중 다리를 다쳤다.

그길로 아이를 차에 태워 병원가서 x-레이는 물론, ct까지 찍어본 결과 결국 발목 골절상을 입었다. 진한 초록색의 깁스를 발끝부터 무릎밑까지 하고 양팔은 목발에 의지한채 걸음을 걸어야만 했었다. 아들은 자기도 속이 많이 상했는지 말없이 눈물만 뚝뚝 흘렸었다.

축구팀 입단 심사는 물론 축구선수의 꿈도 멀리 날아가 버렸다. 뿐만 아니라 당장 학교 등교와 학원을 다니야 하는 것도 문제였다.

 

나의 남편은 아들의 미래의 축구선수는 별 관심이 없었고 지금 당장 학교를 다녀야 하고 학교가 끝나면 학원을 갔다가 학원이 끝나면 다시 집에 와야하는 문제가 시급하다고 생각을 했었나보다.

키가 나보다도 컸고 몸무게도 나보다 많이 나가서 엄마인 내가 아들을 부축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유난히도 땀이 많고 열이 많은 아들과 아빠인데 그날부터 아들과 아빠의 전쟁이 시작 되었다.

 

아들은 다리가 불편하고 또 가렵고 하니 짜증을 많이 냈고, 그런 아들을 보고 아빠는 누가 다치래?” 이러면서 아들의 화를 돋구었다.

아들은 아빠의 말에 내가 다치고 싶어서 다쳣어?”라고 받아치고 집 분위기는 금새 냉랭하게 바뀌었다.

 

하지만 아빠는 아들의 하교 시간에 맞춰서 학교로 마중을 나갔고 아들을 데리고 학원으로 갔다. 하필 학원이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인데 60키로가 넘는 아들을 아빠가 업고 학원 교실까지 데려다주고, 학원이 끝날 시간에 맞춰서 다시 3층에서 아들을 업고 내려와서 집으로 데리고 왔다.

설상가상으로 하필이면 우리집도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이었다....매일 등교할 때 업고 내려가서 학교에 데려다 줘야했고,,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학원이 끝나면 집으로 오는 도돌이표 생활이었다. 

그때부터 아빠의 고난은 시작되었다.

 

학원이 끝나고 집으로 오면 아빠와 아들은 둘 다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런 아빠는 옷을 갈아입고 땀에 절어있는 자기먼저 씻을새도 없이 땀범벅이 되어 있는 아들을 욕실로 데려가서 깁스한 다리만 제외하고 행여나 깁스 속에 물이 들어갈까봐 비닐로 꽁꽁 싸맨 후에 아들을 꼼꼼히 씻겨 주었다.

 

이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한달을 해왔다...주말을 어찌나 반가워하던지 ...

그렇게 시간을 보내 한달후 깁스를 풀게 된 날 아빠도 해방이 되었다.

 

내남편은 나와 자식들에게도 싹싹하거나 수다스럽지 않다. 흔히 말하는 경상도 상남자다.

가정적이긴 하지만 늘 과묵하다. 아빠니까 당연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묵묵히 아들을 거두는게 신기하기도 하면서 존경스러웟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아마 내 딸이 저렇게 다쳤다면 나역시 그렇게 했을 것이다.

 

부모가 되니 자식을 위해 엄청나게 많은걸, 모든걸 희생해서 내어 줄수 있다.

내가 이런마음을 가질수 있다는게 신기하다. 엄청나게 이기적이고 배려심이나 협동심도 없던 나였기에...

나의 어린 자식들을 보며 나의 나이드신 부모님께 죄송스런 마음 뿐이다.

나의 자식들에게 행하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배려를 나역시 나이드신 부모님께 받고 자라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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