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지는 가을이 되어 나무에 주렁주렁 열려 있는 대봉을 보면 늘 아버지 생각이 난다.
맞벌이로 바쁜 나와 내 남편 때문에 우리딸은 자주 친정부모님께 가 있었다.
친정에서는 우리 딸이 첫손주였다.
그래서인지 우리아버지는 유난히도 딸아이를 이뻐하셨다.
"이번주 주말에 내려갈께요!"라고 말씀이라도 드리는 날엔 아버지는
우리가 도착하기 몇시간 전부터 대문앞 큰길까지 나와서 우리들을 기다리셨고,
하루이틀 머물다 우리가 돌아가는 날이면 대문 밖에 서서
아쉬움에 눈물을 훔치셨다.
우리딸은 유난히 병치레가 잦았다. 한번 아프면 수일동안 앓아눕기 일쑤였고,
아프지 않을 때도 먹는데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그게 안타까웠는지 아버지는 우리딸아이 입에 뭐라도 하나 넣어주려 애쓰셨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안먹겠다고 종종거리며 달아나는 우리딸을
따라다니시는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아버지는 딸에게 동네슈퍼에서 이것저것 군것질거리도 많이 사주셨지만
우리딸이 제일 좋아하는건 살짝 일린 달큰한 홍시였다.
어쩌다 일에 쫓겨 친정에 내려가지 못할 때면 아버지는 커다란 상자에
혹시라도 상처입을까봐 대봉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포장을 해 택배로 보내셨다.
아버지의 대봉 택배가 도착하면 나는 시원한 창가에 나란히 늘어놓고
홍시로 익기를 기다려 아이들에게 먹였다.
우리 형제들에겐 엄하셨지만 손주들에겐 항상 따뜻한 웃음으로 바라봐 주셨던
강한 직업 군인이셨던 우리아버지....는
무더운 여름 새벽에 아무도 없는 집에서 심장마비로 혼자 세상을 떠나셨다.
하늘이 무너지는거 같았다.
우리 가족들은 아직도 홀로 외롭게 힘들게 가셨을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 아무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린다.
친정에 가면 여전히 아버지가 어서 오라고 반겨주실 것만 같다.
몇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아버지의 생전의 모습이 생생하다.
술한잔 드시면 웃으시던 웃음소리, 즐겨 부르시던 노랫소리,
유난히 손재주가 많으셔서 어린시절 만들어 주셨던 눈썰매까지....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너무나 죄송하고,
내자식고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 뵙지 못한게 가슴이 무너질듯 아프다.
아버지 정말 죄송해요....
감사합니다 1배
죄송합니다 2배
잘하겠습니다 3배
이삼배를 아버지의 영정사진에 바치는 저를 용서하세요...
사랑합니다....
먼훗날 아버지 곁으로 갔을 때 반갑게 맞아주세요...
보고싶습니다... 아버지!!!
* 이 게시글을 무단으로 복사해 게재할 경우 민, 형사상의 불이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